Home>News>[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감독에게 영감주는…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감독에게 영감주는 ‘수상한 그녀’
2014. 04. 18| 0

이용주 영화감독이 본 영화배우 심은경

 

배우 심은경 씨(20)가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동아미디어센터의 사내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종원 기자
 
 
한 소녀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영화 오디션장에 들어섰다. 보통은 매니저와 함께 오는데 어머니와 같이 온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5년 전, 감독 데뷔작인 영화 ‘불신지옥’의 최종 오디션장에서 당시 열다섯 살이던 은경이를 처음 만났다. 은경이는 영화계에 발을 들인 지 얼마 안 된 신인 배우였다.

 

난 영화에서 ‘신들린 중학생 소녀’를 연기할 아역 배우를 찾고 있었다. 대사가 많지 않아 표정과 호흡만으로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 어려운 배역이었다. 이 오디션에 참가한 배우들은 100여 명. 연기 좀 한다는 국내의 여자 아역 배우들은 거의 다 모인 셈이었다. 은경이를 포함해 20여 명이 최종 오디션에 올라왔다.

은경이는 유난히 수줍음을 많이 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릴 적 소심한 성격을 고치기 위해 어머니가 연기 학원에 보낸 게 은경이가 연기를 시작한 계기였다) 귀여운 인상이 공포 영화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대본 리딩 테스트가 시작되자 눈빛이 달라졌다. 시간은 짧았지만 그 눈빛은 ‘자기만의 세계가 확실한 아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난 망설이지 않고 은경이에게 ‘신들린 소녀’ 배역을 맡겼다.

은경이의 카리스마는 나를 포함해 함께 촬영한 선배 배우들까지 놀라게 했다. 은경이가 한 선배 배우의 뺨을 때리는 장면을 촬영할 때였다. 보통 때리는 사람을 연기하는 게 맞는 사람 배역보다 더 어렵기 마련이다. 특히 신인 배우들은 뺨을 때린 뒤 상대방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한참동안 쉬었다 다시 촬영에 들어가곤 한다.

하지만 은경이는 선배 배우가 뒤로 넘어질 정도로 세게 뺨을 때리고도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다음 장면 촬영을 위해 감정몰입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운 집중력, 신인 배우에게선 좀처럼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선배 배우들에 둘러싸여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촬영할 때에도 은경이의 집중력이 돋보였다. 자신이 눈물을 흘리는 순간을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상황은 성인 배우에게도 굉장한 부담이다. 그래서 이런 장면을 촬영할 때에는 한두 번 쉬어가곤 한다. 하지만 은경이는 15분 넘게 말없이 배역에 몰입해 있었다. 열다섯 살짜리 아역배우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멘털(정신력)’이 강했다.

또 은경이는 성인 배우 못지않게 생각이 깊었다. 연기에 대한 고민도 또래 배우들보다 성숙한 편이었다. 아역 시절에는 호기심이나 화려한 세계에 대한 동경 때문에 연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디션에서 ‘반드시 붙고 싶다’는 간절함은 있지만, ‘이 배역을 꼭 맡고 싶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역배우는 드물다.

그러나 은경이는 달랐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불신지옥’ 오디션에 참가한 것도 순전히 은경이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괴기스러운 배역인데도 시나리오를 읽더니 “꼭 하고 싶다”고 말했단다. 성인 배우들도 자신이 작품을 직접 고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지금도 은경이는 자신이 직접 출연할 작품을 고른다고 한다.

‘광해’ ‘써니’ ‘수상한 그녀’ 등 은경이가 출연한 영화들에서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마음가짐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배역은 달라져도 은경이의 연기에서는 남다른 예술 혼(魂)이 느껴진다. 진정한 ‘메소드 연기(배우가 배역에 몰입해 완벽하게 그 인물 자체가 되어 연기하는 기법)’를 하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은경이를 보면 ‘연기를 통해 스타가 되고 싶다’는 것보다는 ‘정말 연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진심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화려한 외모를 타고나진 않았지만 은경이는 감독들에게 영감을 주는 배우로 꼽힌다. 명품 배우들의 자질 중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갖춘 셈이다. 이런 배우와 함께 영화를 찍는다는 건 감독에게 큰 행운이다.

 

앞으로 은경이가 만날 세계는 지금까지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책임감이 커진 만큼 기존에 하지 않던 고민들도 생길 테지만, 항상 고민하고 노력하면서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리라 믿는다. 그리고 자기만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도 더욱 다채로운 색깔을 지닌 배우가 되길 바란다. 은경이의 ‘내일’이 궁금해진다.

 

 

이용주 영화감독
 

기사 공유하기

기사를 다양한 소셜 채널로 공유하실 수 있습니다

blog comments powered by Disqus
검색 폼

bh Audition

재능 있는 신인을 찾습니다.

More

Popular

Recent

Comments

bh T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