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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역할 다른 느낌, 배수빈 이렇게 멋졌나?
2016. 07. 26| 0

[골라보는 재미]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속 매혹적인 두 페어

[오마이뉴스 글:곽우신, 편집:유지영]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가 1년 만에 돌아왔다. 지난 5일,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은 다시 한 번 렉싱턴 호텔 661호로 바뀌었다. 초연 때(관련 기사 : 19금 연극, 무대는 렉싱턴 호텔 661호)에 비해 몇 가지 대사와 디테일 그리고 엔딩에서의 표현이 약간씩 바뀌었지만, 드라마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다. 단 100명의 입장만 허락된 직원용 호텔룸에서 느꼈던 긴장감은 그대로이다. 빨간 풍선을 향한 간절한 욕망 역시.

그렇다면 초연 조합 이윤지(이석준-윤나무-김지현) 페어와 새롭게 합류한 배민희(배수빈-신성민-임강희) 페어 중 어떤 조합으로 보는 게 좋을까? 여섯 배우 모두 워낙 잘하는데다가 매력도 달라서, 가급적이면 페어별 3부작을 모두 관람하기를 권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 팽팽 회전문 돌고 싶은 관객도 많지만, 넘쳐나는 호텔 장기투숙객으로 인하여 표 한 장 잡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은 상황. 혹은 보고 싶은 다른 작품이 많아서, 주머니 사정 상 3부작을 각 한 번씩만 보고 말 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두 페어의 3부작을 모두 보고 블러드캐쉬(재관람 카드) 30% 쿠폰 발급 받은 기념으로, 지극히 주관적인 페어 추천을 해보려 한다.

[로키] 한 번만 볼 거라면, 역시 김지현
 

▲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로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를 깨닫는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역시 깨닫는다. 룰라 킨은 계속 누군가에게 의지하여 이 도시를 탈출하려고 했다. 돈 많은 회계사, 잠자리 기술이 훌륭한 이탈리아 남자, 식당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라틴계 남자. 하지만 사실, 이 방을 나가는 데 반드시 누군가가 필요한 건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 자신만의 두 다리로 시카고를 탈출한다.
ⓒ 스토리피

로키의 중심은 레이디이다. 빠른 템포로 시종일관 관객을 들었다놨다 해야 하는 극의 특성상, 레이디의 순발력과 경험이 극의 성패를 좌우한다. 물론 임강희 배우의 레이디도 굉장히 매혹적이지만, 로키만 두고 봤을 때는 확실히 초연의 경륜이 있는 이윤지 페어가 약간 더 끌린다.

'못하는 게 없는 배우'라는 타이틀은 쉽게 붙지 않는 별명이고, 이 수식어가 어울리는 연극·뮤지컬 배우는 손에 꼽는다. 그리고 김지현은, 그 몇 없는 자리에 당당하게 불릴 수 있는 배우 중 하나이다. 김지현의 레이디는 특별하다. 차진 욕도, 시크한 표정도, 깊은 감정도 모두 표현이 탁월하다. 하이라이트는 호텔 벨보이 번의 대사 "혼자서는 나가실 수 없잖아요, 미스 킨"에 충격을 받은 듯 머뭇거리다가 반응하는 부분.
 

▲ 김지현 콘셉트 포스터 못하는 게 없는 배우, 김지현. 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이 배우는,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기대 이상을 보여준다. 단순히 넓은 배우가 아니라, 그 넓음 이상의 깊이를 간직하고 있는 배우이다. <카포네 트릴로지> 그중에서도 로키에서 그녀의 능력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 스토리피

여기에 이석준과 윤나무 배우가 튼실하게 레이디를 뒷받침한다. 극 중간에 참사(실수)가 일어나더라도, 자연스럽게 극의 일부로 승화시키며 웃음과 함께 뒷수습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는 여러 작품을 함께 한 배우 사이의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영역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 이석준이 주저없이 망가지는 모습도 일품이고, 윤나무의 볼디는 인생 캐릭터로 꼽아도 될 정도로 코믹하다.

로키는 <카포네 트릴로지> 3부작 중 유일하게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는 극이고, 동시에 여성의 주체성이 강렬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희화화된 비극의 연속에서 김지현의 롤라 킨은 관능적이고, 유쾌하고 동시에 애절하다. 양손으로 세상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펼쳐보인 후, 유유히 빨간 풍선을 들고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응원할 수밖에 없다.

[루시퍼] 신선한 긴장감, 배수빈
 

▲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루시퍼' 성경 속 타락천사 '루시퍼'의 이름을 딴 <카포네 트릴로지>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 "이 조직을 지키는 가디언, 그러니까 수호천사 같은 것"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하는 루시퍼. 마이클에게도, 말린에게도 그는 "천사"였다. 그러나 그가 그저 순수한 천사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스토리피

이석준 배우는, 이제 고작 재연인데 '닉 니티' 장인이 된 경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초연을 이미 본 관객이라면, 배수빈의 닉 니티를 한 번 꼭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이윤지의 루시퍼는 잘 설계된 판 위에서, 치밀하게 계산된 긴장감과 몰입감을 준다. 반면 배민희의 루시퍼는 조금 더 신선하고 조금 더 의외성이 있다.

브라운관에서 다양한 매력을 뽐냈던 배수빈이 대학로 연극 무대에 온 것은, 연극 마니아들에게 축복이나 다름없다. 이전에도 다른 작품을 한 경험이 있지만, 배수빈이 대학로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잊을 수 없게 한 건 역시 <프라이드>부터였다. '배필립'으로 사랑받던 그는 이어서 <킬 미 나우>에서도 발군의 연기력을 보여줬다. 그를 향한 관객의 신뢰는 <카포네 트릴로지>에서도 배신당하지 않았다. 대사 하나하나의 리듬과 강약을 조절하며 주변 배우들과 밀고 당기는 그는 극을 리드하는 데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
 

▲ 배수빈 콘셉트 포스터 무대에서 그가 보여주는 아우라에는 나름의 '포스'가 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지언정, 그가 좋은 배우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는 지금까지 관객을 실망시킨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스토리피

이석준의 닉 니티가 '타락'한 천사의 느낌이 강하다면, 배수빈의 닉 니티는 타락한 '천사'의 느낌이 더 강하다. 말린 니티를 향해 사랑한다고 눈물 흘리는 그의 모습은, 이 폭력적이지만 동시에 순정적인 캐릭터의 양면성을 관객이 모두 이해하게끔 만든다. 또한 신성민의 마이클은 배수빈이 잘 돋보일 수 있도록 멋지게 조력한다. 자동차 폭발 사고로 아이들을 잃은 후, 닉에게 따지러 들어온 이후 신성민 마이클의 감정선은 엄지 두 개가 부족하다. 아, 임강희의 말린 니티도 굉장히 사랑스럽다. 닉에게 의존하고 집착하는 그 성정도 잘 표현하고, 그 감정이 닉에 대한 실망으로 변하는 포인트도 부드럽게 소화한다.

잡아보려 했지만, 너무 멀어서 결국 잡을 수 없었던 빨간 풍선.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터뜨려버린 빨간 풍선. 총성과 함께 방 밖으로 인물들이 사라지고, 텅 비어버린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은 공허함이 아니라 그 무대를 꽉 채운 슬픔의 무게감을 마주하게 된다.

[빈디치] 이미 완성된 빈디치, 윤나무
 

▲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빈디치' 빈디치는 루시와 손을 잡고 프랭크 듀스를 파멸시키기 위해 함정을 판다. 그토록 복수하고 싶은 사람 앞에 마주하며 태연하게 다른 사람인 척 연기해야 하는 빈디치. 피터를 연기하는 빈디치, 그런 빈디치를 연기하는 윤나무의 열연이 돋보인다.
ⓒ 스토리피

영맨의 복수극인 빈디치는 <카포네 트릴로지>에서 가장 잔혹한 작품이다. 정의감에 불탔던 경찰 빈디치는 이제 경찰청장 프랭크 듀스를 향한 복수심에 불타오른다. 그를 돕는 건 아버지를 극도로 혐오하고 있는 프랭크 듀스의 딸 루시. '빈디치'는 빈디치가 그토록 복수심에 사로잡힌 이유에 대한 설득, 프랭크 듀스가 얼마나 위선적이고 악랄한 인물인지에 대한 묘사 그리고 애증이 뒤섞인 빈디치와 루시의 감정 표현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빈디치'에서 가장 빛나야 하는 건 당연히 영맨인 빈디치이다. 신성민의 빈디치도 개성이 있지만, 중·후반부에 비해 초반부가 약간 아쉽다. 미리 녹음한 음성으로 내레이션 처리되는 빈디치의 속마음과 무대 현장의 빈디치 연기의 아귀가 딱 맞아야 하는데, 표정 연기가 인상적인 데 반해 아주 조금 이 박자가 안 맞는 느낌이다. 조금만 '로딩'이 된다면 신성민 빈디치도 훌륭해질 것이다.
 

▲ 윤나무의 콘셉트 포스터 초연에 이어 재연에도 돌아온 윤나무. 로키, 루시퍼, 빈디치 모두에서 자기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하지만, 특히 자신이 극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 빈디치에서 활약이 돋보인다. 끼가 많은 이 배우는 폭소와 오열을 오가며 관객을 흔들어 놓는다.
ⓒ 스토리피

신성민의 빈디치가 살짝 세공이 덜 된 원석의 느낌이라면, 윤나무의 빈디치는 이미 깔끔하게 커팅된 완성품이다. 시종일관 무겁게 흘러가는 가운데 잠깐씩 숨통을 트일 웃음포인트를 놓치지 않는다. 동시에 그 웃음이 극이나 캐릭터 전체를 해치지 않도록 섬세하게 조율한다. 음악과 함께 공기 전체가 변하는 것 같은 무대 위에서, 윤나무는 흔들리지 않고 맹렬하게 자신을 태운다.

김지현의 루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녀가 "이젠 '아니요'라고 말할 거야"라면서 총을 꺼내드는 장면부터는 날숨 하나 제대로 뱉기 힘들 정도로 극이 팽팽해진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총구를 이미 출발한 총알처럼 종말로 치닫는 '빈디치'. 윤나무의 빈디치는 김지현의 루시와 멋지게 맞물려 속도감과 안정감을 양손에 쥔다. 이석준의 프랭크는 보고만 있어도 욕하게 될 정도로 그 노추한 욕망을 절묘하게 드러낸다.

그냥 여러 번 봐라

상기했듯이, 이윤지와 배민희 모두 훌륭하고 저마다의 매력이 있어서 객관적으로 누가 더 '낫다'라고 말하는 건 불가능하다. 초연 때 있었던 페어별 크로스 체인지 '레이디의 외출' '올드맨의 외도' '영맨의 산책'이 인기를 끌었던 것 역시, 배우별 조합이 바뀌면 극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고 할 정도로 색다른 매력을 주기 때문이었다. 같은 역이라도 각 배우들이 표현하는 캐릭터의 호흡과 아우라는 확연하게 다르다. 심지어 같은 배우라도 회차마다 조금씩 다르다.

이 세상에는 똑같은 무대도, 똑같은 배우도, 똑같은 관객도 없다. 어제의 무대가 오늘과 다르고, 이전 회차의 배우가 지금 회차의 배우와 다르며, 관극 경험이 쌓인 각 관객이 집중하는 포인트도 제각각이다. 렉싱턴 호텔 661호는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경험과 감동을 선사한다. 초연을 본 관객이든, 재연으로 처음 관극에 나서는 이든 알 카포네의 그림자가 뻗친 시카고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바뀌는 디테일들을 비교하며, 미세하게 변주되는 극의 맥락과 감정을 캐치하는 것도 <카포네 트릴로지>를 즐겁게 감상하는 포인트이다. 그러니 주머니 여유만 된다면 6번 그 이상 보는 게 최고의 선택지이다.

그렇다고 <카포네 트릴로지>가 재미있기만 한 작품은 결단코 아니다. 김태형 연출은 극적 재미와 사회적 의미를 잘 버무리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카포네의 총구가 대한민국의 어디를 겨누고 있는지, '가장 완벽한 오브제' 빨간 풍선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 여섯 배우들이 롤러코스터처럼 안내할 것이다.
 

▲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2종 포스터 지난 5일,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의 2종 포스터이다. 왼쪽이 이윤지(이석준-윤나무-김지현) 페어의 포스터, 오른쪽이 배민희(배수빈-신성민-임강희) 배우의 포스터. 여섯 배우의 두 조합이 내뿜는 아우라가 각 극마다 다르다. 100명에게만 허락된 좁은 호텔방은 장기투숙객을 환영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두 페어의 매력을 모두 확인하도록 하자. 오는 9월 18일까지.
ⓒ 스토리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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